[대외활동] 첫 대외활동을 해외탐방이 되기까지; 해외탐방 1편 - 기아 글로벌 워크캠프 (영국,프랑스,이탈리아)
안녕하세요, 스펀지문입니다.
2012년 스펀지문의 대외활동 총결산 프롤로그편에 이어 드디어 본격적인 1편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약속드린 것처럼 2012년을 기반으로 포스팅을 작성하..려 했지만, 개인적인 욕심과 지난 2010년 말부터 시작한 다양한 경험들과 이야기들을 소개해드리면 더 많이 얻으실 거 같기에 2010년부터 이어져온 저의 대외활동기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큰 주제로는 ‘그렇게 당신의 대학생활이 끝나가고 있었다.’이며,
부제는 ‘후회없는 대학생활 하는법’으로 진행을 해보려 합니다.
첫편은 바로 대학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대외활동편입니다.
저는 참으로 많은 대외활동을 하면서 정말 많은 경험들을 하였습니다. 가장 큰 결과로는 13개국을 전액무료로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었죠. 제 돈 들여도 가기 힘든 국가들을 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떠날 수 있었던 방법은 바로 ‘대외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오늘 포스팅 내용은 저의 첫 대외활동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기아 글로벌 워크캠프’입니다.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중 내꺼다 싶으시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멋진 결과를 만들어내시길 바랍니다.
14번 탈락후, 첫 해외탐방 프로그램이 되기까지..
군 제대 후 뛰어든 사회생활, 대학생활에 갈증을 느끼다.
2010년 1월 갓 제대한 나는 흔히 말하는 칼 복학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집안에 손을 벌려 학비를 충당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집안에 300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덜컥 낼 여력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도는 바로 ‘사회진출’이었다. 사회진출이라 함은 대학생에게 인턴 혹은 아르바이트가 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시급 4000원으로 몇 날 몇 일을 일해도 내가 생각하는 월급을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대기업 공채까지는 안 되더라도 아웃소싱으로라도 대기업 사원들과 일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채용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졌다. 결국 나는 S전자 글로벌양성그룹 사원들과 함께 파트너로 일할 수 있는 모 교육그룹 인턴으로 취직하였다. 계약기간은 6개월, 학비를 충당하기엔 충분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매일같이 6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며, 쳇바퀴 굴러가는 직장생활을 하였다. 난 분명 대학생인데..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쉬웠어요!” 하는 이야기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대학생으로서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난 복학과 동시에 나의 대학생활을 내가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후회 없이 졸업하고 말테다!
내 돈들이지 않고도 해외로 가는 방법이 있단 말이야?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난 뒤 대학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었다. 하지만 해당기업 임직원의 설득과 어느새 집안의 재정적인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있는 내 생활을 돌아보고 못 이기는 척 다시 6개월을 재계약하고 말았다. 분명 몇일 전까지만 해도 대학으로 돌아가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이 얼마나 허망한 반전인가. 사람은 환경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서서 쳇바퀴 굴러가는 삶을 ‘다시’ 살게 되었다. 아무리 멋진 목표가 있고, 다짐을 해보아도 나는 복학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많았다. 마치 노년의 과장님이 가정을 내팽겨치고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웹서핑 도중 운명적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해외탐방을 보내준다는 모집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아니 보고야 말았다. 이 무슨 말인가, 내 동기들이 하나둘씩 큰 돈 써가며 다녀온 어학연수를 손가락만 빨며 먼나라 이야기 보듯 쳐다보던 나에게 삶의 단비 같은 정보라니.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해외탐방’을 전액무료로 다녀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니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회사업무가 끝나면 집으로 달려가 모 대학생활 정보 카페에 접속하여 대학생 대상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닥치는 대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로또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처럼.
14번 떨어진 대외활동,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하긴 내가 이렇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생각했다면 누군들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대학생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벌떼처럼 지원을 하였을 테고 몇 자리를 두고 수십 대 일 아니 수백 대 일의 경쟁률로 몰아닥쳤을 것이다. 나는 결국 14번이나 떨어진 패잔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내가 갈 길이 아니라며 자기합리화만 거듭하게 되었다. 14번 떨어지는 과정 중 서류가 유일하게 붙어 면접을 보러 갔던 적이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국제교류 프로그램’으로 체코에 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어렵게 붙어 찾아간 면접장에서 어버버 거리기 일쑤였고, 결국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내가 가장 한심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체코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있었는데, 나는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않고, 나의 운만 믿고 갔던 것이었다. 이 기회를 마치 로또처럼 생각한 것이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상황인가. 집에 도착한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대외활동으로 인해 질풍노도의 시기가 다시 찾아 온 것이었다. 지금까지 떨어졌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의 문제점은 명확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조차 모르는 것이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흔한 자기소개에 열심히 하겠다. 열정적인 사람이다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좋은 기회를 잡고 싶다는 우리집 강아지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지원동기라고 끄적여 놓았었다. 대외활동은 로또가 아니다. ctrl+c,v해서 어느 하나 걸려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지원한다면 면접관들도 똑같이 그렇게 느낄것이 분명하다. 좀 더 진정성 있게 지원서마다 꼼꼼히 작성을 하여야한다. 바로 나를 아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때부터 난 큰 도화지를 꺼내들고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는 낙서들을 하기 시작했다.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한 걸음 다가서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나를 정리하며 ‘어머니’, ‘밝고 긍정적인 성격’, ‘사람’ 이라는 3가지 키워드가 나왔다. 나도 그동안 몰랐던 나를 키워드로 정리를 하는 일취월장한 자기 브랜드를 갖는 첫 단추를 꿴 것이었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 속에 ‘기아 글로벌 워크캠프’라는 대외활동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이젠 지난번 실패 속에서 로또처럼 지원했던 타 프로그램처럼 하지 않으리라, 자신감이 올랐다. 나는 내가 생각한 나의 3가지 키워드를 활용하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기소개서에서는 이런 식으로 나를 표현하였다.
지원동기: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행복하고 고마운 저는 87년 서울태생으로 갓 제대하여 세상 물정 모르고 사회라는 허허벌판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하고 있는 "글월 문! 어질 현! 도울 우!" 문현우라고 합니다.
어질고 도우며 살아가라는 친할머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건아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세상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으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어머님이라는 장인이 손수 고운 문현우라는 진국, 직접 보여드리고 맛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진국 문현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워크캠프를 통해 얻고싶은 것:
"사람, 사랑"을 얻고 싶습니다.
(중략)
사람, 사랑..
바로 제가 얻고 싶은 것이며 또한
제가 드리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땀 흘리며, 땀으로 소통하는 사랑의 순간들이 있으면
자칫 비뚤어진 생각들로 가득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변모할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 두 가지만 얻는다면 전 아무것도 바랄게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워크캠프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전 모든 것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자부합니다!
문항들이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아직까지 어색하기 그지없는 자기소개서였다. 하지만 진정성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자기소개서를 보여주며 나의 진심을 알겠냐고 물어봤다. 그들은 모두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피드백을 주었다. 이번 자기소개서의 강점은 바로 있는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키워드 3가지를 활용하여 쑥쑥 자기소개서를 채워나갔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성이 들어간 자기소개서의 결과는 당연히(?) 합격이었다. 업무 중에 받은 합격전화는 하루 종일 나를 들뜨게 만들었고, 동네방네 자랑하며 내 자신의 합격을 자축하였다. 예전에 느꼈던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대학생과 닮아가는 모습 또한 내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러워졌다. 나를 알고 진정성 있게 작성한 것만으로도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니. ‘나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이때 생긴 나의 철칙이 됐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때 꼭 언급하는 내용이 되었다.
두 번째 난관 면접에 봉착하다.
서류를 무사히 합격하고, 두 번째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바로 공식적인 대외활동 첫 면접이었다. 사실 전에 한번 본 것이 큰 경험이 되었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로또에 당첨된 기분으로 본 것이라, 준비도 너무나 미비했고 너무 떨었던 나머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나지 않아, 경험은 됐으나 도움으로 작용하진 못했다.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알아가던 나를 누군가에게 제대로 소개하는 첫 자리이니만큼 긴장은 배가되었다. 과연 나는 면접관들에게 나를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 머리가 소용돌이쳤다. 나는 훈련병이 화생방에 끌려가듯 면접장까지 걷는둥 마는둥 겨우겨우 도착하였다. 기아자동차 압구정 사옥에서 치러진 면접은 대기업 건물답게 작지만 웅장했고, 면접장에 끌려온(?) 나를 충분히 압도하다 못해 잡아먹으려 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잡아 먹힐 것인가? 아님 나를 어필하여 잡아먹어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이건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하고 당당하게 면접 대기 장소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난생 처음 본 2명의 여성 면접자들은 나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화생방을 경험해 봤을리는 없겠지만 군복무시절 보았던 화생방을 기다리는 여느 병사들과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떨리는 몸을 추스르고 면접장에 입장하였다. 눈앞에 들어온 4명의 면접관들 그리고 책상에 의자를 뺄 수 있는 구조가 내 눈에 펼쳐졌다. 그때마침 함께 떨면서 들어오는 면접자들에게 의자를 빼줘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스쳐갔다. 여지없이 나는 의자를 빼서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바로 면접관께서 “경쟁잔데도 매너가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이 방법을 통해서 나를 어필할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책상에서 의자를 뺄 수 있는 구조이기에 다년간의 서비스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그들을 살짝 도와줄 생각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캐치하고 면접관님들로부터 좋게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시작한 면접은 본론에 들어가면서부터 내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함께 면접을 보는 경쟁자들의 Native처럼 답변하는 영어면접에 주눅 들고, 기아자동차에 대한 정보를 쏙쏙 들이 알아 답변하는 모습에 두번 주눅 들었다. 내가 설 자리는 없어보였다. 그렇게 보는둥 마는둥 면접을 보고나니 면접시간이 끝나 있었다. 그렇게 터벅터벅 면접장을 빠져 나가려던 찰나, 첫 번째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멋지게 답변을 하던 그녀들이 긴장이 풀리면서 의자를 제자리에 놓지 않고 나가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상황과 좀 달랐다. 충분히 의도적으로 나는 의자를 제자리에 정리해놓고 “면접 진행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면접장을 나왔다. 그리고 몇 주 뒤 나는 최종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다.
매너는 면접의 필살기! 산전수전 끝에 첫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하다!
면접을 죽 쓴 이유는 명확하다. 초등학교시절 조기유학을 다녀온 나는 영어면접에서 답변을 한 뒤 “조기유학 다녀온 거 맞아요?”란 정곡을 찌르는 답변을 면접관님으로부터 들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1분여간 내 답변차례에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하며 답을 못하기도 하였다. 그랬던 내가 최종합격 소식을 들었던 이유는 바로 ‘매너’였다. 답변은 제대로 못하여도 매너하나만 있다면 믿고 해외로 보내줄 수 있겠다고 면접관들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 이유인즉 워크캠프는 해외로 덩그러니 혼자 떠나 외국인 친구들과 20여 일간을 보내는 공동체 생활이기에 사교성, 매너가 키포인트여서이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기아자동차를 잘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은 워크캠프에 가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어울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거 같다는 ‘가능성’을 봐주신 것이라 본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알고, 매너를 실천하며 최초의 대외활동, 그것도 해외탐방 프로그램에 덜컥 붙어 프랑스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잡고 말았다.
우물 밖을 나온 개구리의, 우물 밖 이야기.
첫 동기들과 만나는 자리, 집합장소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39명의 동기들을 만나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곳이 바로 우물 밖이었구나.” 입학과 동시에 연극동아리에 가입하여 학교 밖을 떠나지 않은 것이 2년,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여 전국에서 모여든 전우들과 함께하며 우물 밖을 탈출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건, 군 생활을 하건, 학교생활을 하건 한정된 사람들과 한정된 틀 안에서만 머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깨우친 것이다. 바로 39명의 각기 다른 학교에서 모인 친구들을 통해서 말이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장점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각기 다른 학교의 친구들을 만나며 그들의 속한 대학문화를 알고, 정보들을 공유하므로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여는 더듬이가 자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SKY 명문대 친구들 그리고 각 학교별로 특출 난 친구들을 만나며 나는 지금까지 내가 속한 곳이랑은 다른 우물 밖 세상을 경험하며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만약 내가 14번의 탈락을 하며 여기까지다라고 생각했었더라면 나는 졸업까지 우리학교가 세상의 전부로 알며 대학생활을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 돼서야 우물 밖을 경험하고 남들보다 더딘 행보를 거듭하지 않았을까? 그런 내가 대학 3학년 복학 전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기아자동차 글로벌 워크캠프는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열어주는 열쇠를 쥐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39명의 친구들을 사귀고 프랑스로 떠나 각국에서 온 13명의 해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매번 시기가 거듭하고 횟수가 거듭할 수록 또 다른 우물 밖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해외를 공짜로 다녀올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사소한 물음에서 시작한 나의 대외활동 해외탐방 도전이 나에게는 청춘의 큰 느낌표를 찍어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3년인 지금 나는 13개국을 전액무료로 세상을 여행할 수 있었으며,
200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 그리고 다양한 강연, 수상, 언론소개 등을 거머쥘 수 있었다.
첫 연재물을 정리하며, 대외활동 TIP
1. 나를 연구하자.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키워드로 나를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2. 14번의 탈락..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될 때까지 한다.
3. 면접장에서의 매너는 필살기다.
4. 대외활동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것이다.
5. 우물밖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즐거운 세계가 펼쳐져 있고, 정보의 더듬이를 성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오늘은 첫 대외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과정을 극복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첫 편의 서막을 알렸다.
긴 글이라 누군가 다 읽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한명이라도 나의 글을 읽고 자극을 받고 열정이 타올랐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단 한명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스펀지문의 대외활동 흡수기를 차곡차곡 연재해갈 예정이니, 계속 지켜봐주기 바란다.
작성자 링커리어
신고글 기아 글로벌 워크캠프 14번의 탈락 끝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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