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18살 나이에 세계 무대로 나아가고 싶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1년간 유일 아시아인으로써 미국공립학교에 다니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세계를 무대로 삼아 활동을 하고싶은 24살! 언제나 긍정적이고 활기찬 갓 예비역 ㅁㅁㅁ입니다. 저는 열정과 겸손을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ㅇㅇ대학교에서 ㅇㅇㅇ을 전공하고 있으며 ㅇㅇㅇㅇ도 함께 이중전공을 수료 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학업적인 측면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12년간 그저 공부만하고 대학에 입학해서도 공부, 스펙, 취업준비에 목매어 사는 것 보다 젊은 피로 들끓는 대학 생활을 좀 더 즐기고 싶어 교내에서는 과내 축구동아리 회장를 맡아 팀에 6년 만의 교내 축구대회 우승컵도 안겨 보고 학생회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만나보는 리더 역할을 경험했고 군에 입대해서도 대대급 병력을 이끄는 선임병장으로써 같은 부대 병사들의 고민과 생각을 들어줌으로써 같이 걱정해주고 그들의 즐거운 군 생활이 지속될 수 있도록 보살피는 보직을 보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대외적으로 글로벌 한국문화관광 외교대사 활동도 하고 나이키 위런 서울 자원봉사를 하며 사람들의 숨 쉬는 열정을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과 인연을 맺는 신 인적네트워크 형성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이러한 젊은 날 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바탕으로 지금 보다 더 넓은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제 꿈을 현실로 이룰 것입니다.
지원동기
‘이 세상에 헛된 경험은 없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남들이 안했던, 하고 싶어 하지만 선뜻 나서지 않는 일을 한번 해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작성했던 자기 사명서를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한 일을 하나씩 이뤄나갈 때 비로소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자원봉사활동은 경험할 수 있는 것들 중 다른 일보다도 값진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두 눈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고 그 속의 마음은 언제나 내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돕는 이런 작은 노력과 실천이 조금씩 모여서, 바라만 보고 있던 두 눈에서 발자국을 내딛어 전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믿습니다. ‘나의 것을 남과 나눈다.’라는 재미를 느껴 재능 기부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주변부터 둘러보자는 차원에서 주변 친구들에게 한두 시간씩 시간을 내어 영어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교내 운동장을 한 시간씩 예약해 교내에 공을 들고 놀러오는 아이들에게 공잘차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아이들이 곧 잘 따라할 때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은 이리 소소한 재능기부이고 미약한 남을 도우는 일이지만 이 재미를 보다 더 크게, 보다 더 넓게 사용하고 싶기 위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대그린존 사업을 통해 중국의 사막화되가고 있는 땅을 가꿔 3천만평방미터에 이르는 대지를 초원으로 바꾸어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전 지구적 관점에서 접근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 현대기아자동차의 생각과 본인 스스로의 느끼는 사회적 책임을 통한 기부와 봉사 생각이 일치해 지원하게되었습니다.
봉사경험
중,고등학교 시절 교회사람들과 함께 양로원, 고아원, 장애우시설과 연계해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양로원에서 할머님, 할아버님들을 위해 대신 빨래도 해드리고 시설청소 및 겨울에는 연탄나르기를 했습니다. 고아원에서도 어린친구들과 함께 게임도 하고 찬양과 율동을 가르쳐주고 준비해 간 선물을 함께 나눴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허전한 벽에 함께 그림을 그린 일입니다. 거기에 꽃 과 나무 자신의 미래모습을 그리는 일을 했는데 매우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헤어질 때마다 언제 또 오냐며 물어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곤 했습니다. 장애우 시설에서는 지체, 지적장애우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체육대회도 하고 그들은 스스로 외출하기 어려운 터라 함께 대공원 산책도 했습니다. 그 안에 유독 저를 따르고 좋아해주던 7살 난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미국에서 교환학생 기간으로 있는 동안 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더 나누지 못하고 전하지 못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그 친구도 분명 천국에서 흐뭇해하고 있음을 믿었기에 군에 입대해서도 선후임들, 미군병력들과 함께 보육원을 찾아가 요리도 해주고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사서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와서는 제가 좋아하는 운동관련 자원봉사를 찾아 나이키 위런 서울 행사의 진행 스태프 신청해 급수대 및 응급 환자 보호 임무를 맡아 성실히 수행하며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정을 함께 느꼈습니다. 지난달사회봉사단 일원으로 함께 농촌봉사활동에 다녀 온 경험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기타경험
가장 머릿속에 남는 두가지는 고등학생 때 홀로 미국에 건너가 미공립고등학교에 다니며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 온 경험입니다. 수업 시간에 지리수업을 하던 중 동아시아 파트에서 동해가 sea of japan이라 되있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는데 그보다 더 속상했던 것은 미국에 간지 얼마 안된터라 영어가 서툴어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동해이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교과서 내용에서도 그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나라,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 정도의 한 단락 정도의 내용만 기재되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의 아쉬움과 스스로의 자책감을 깨우치기 위해 글로벌 한국문화관광 외교대사에 지원해 현재 저희학교에서 함께 수업 받는 외국인 친구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국홍보자료와 세계지도를 선물해 줄 때마다 외국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6년전 수업시간에 미처 말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듭니다.
두번째는 카투사로써 군복무를 하던 시절 매주 금요일마다 인근 초등학교에 미군과 함께 가서 초등학생 친구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했던 때입니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영어로 된 만화도 틀어주고 게임도 하고 회화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때만큼은 ㅇ일병, ㅇ상병이 아니라 학생친구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써주는게 너무나 뿌듯했습니다. 대대병력을 이끌어야 하는 보직으로 옮겨가면서 그만 두게 되었을 때 친구들이 편지를 써서 선물해준것이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그 편지들은 지금도 힘이들때마다 다시 꺼내 읽어보곤합니다.
작성자 링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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