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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천국 천국의알바 자기소개서 "저는 정정한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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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꼭 천국의 알바 네이처크루 4기로 호주필립아일랜드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최대 2000자)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꼬마는 세계합창대회를 치르기 위해 중국 상해와 일본의 후쿠오카로 가게됩니다. 몽골에서 온사람, 호주에서 온 사람, 미국에서 온 사람등.. 나와 다르게 생기고 나와 다른 말을 쓰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이 꼬마는 너무나 놀라게 됩니다.그 곳에서 꼬마는 내가 여태까지 모르고 살아왔던 수많은 곳과 내가 앞으로 알아야 할 더 넓고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 이었습니다. 그 꼬마가 자라 어느덧 스무살의 제가 되었습니다. 스무살, 아직은 모르는 것도 많고 알아가야할 것도 많다는 나이라고들 흔히 말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스무살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겁없이 나의 소신껏 내가하고자 하는 일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적이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봉사단 대면면접을 보기 위해 주중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겨서 교수님께 확인서 승인을 부탁드린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그 때 말씀하셨습니다. "1학년이 벌써 이런걸 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에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에 나이와 학년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취업준비나 스펙을 쌓는 다는 의미도 있긴 하지만, 저에게 이런 활동들은 어린 꼬마가 꿈꾸었던 그 꿈을 실현시켜 줌과 동시에, 인간 이은미를 더 넓고 나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여지껏 저는 계속 제가 하고픈 활동을 하면서 1학년 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후원하는 대학생 봉사단 부터 시작해서 평소에 관심있었던 전국 시장경제 학술 동아리,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서포터즈까지.. 물론 이 속에서 실패와 좌절 그리고 탈락의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비록 슬픔을 겪게 되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내가 스스로 추진해서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재밌고 저에게 교훈을 준다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100번 도전해서 99번 실패,좌절 하더라도 1번 성공한다면 그것으로 저의 젊은 날의 노력과 도전정신은 보상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은미의 도전일지'라는 저의 노트 안에 '필립아일랜드 원정대 4기'라는 제목을 써내려 갑니다. 이틀 전, 저는 장애인 동반 지리산 등반을 1박 2일로 갔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평소에 등산이라고는 동네 앞산도 가기 꺼려하는 저질체력을 가진 제가 지리산이라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그것도 장애우 동반이라니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 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장애우 분들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등반을 하니까 힘든 것을 잊는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 힘이 샘솟고 즐거워 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1박 2일간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이 일로 저는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려워 하지말자' 라는 교훈을 또 얻게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하루하루 새로운 교훈을 얻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번 필립아일랜드 4기에서 저는 또 새로운 교훈과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얻어가고자 합니다. 저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주십시오. 스무살의 패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를 한 줄로 표현하고 그 이유를 적어주세요. “나는 ( )이다.”(최대 2000자)

저는 ‘정정한 할머니’입니다. 저는 저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의 친구 중에서는 저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너무 궁금했던 저는 제 친구에게 왜 저를 할머니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진짜 친 할머니처럼 다른 친구들을 진 잘 배려해주고 잘 이끌어주고 고민거리가 있으면 상담을 잘해주기 때문에 붙여준 별명이라고 친구는 말했습니다. 맨 처음 할머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안이 벙벙하고 내가 늙어보여서 그렇게 부르는가 싶어서 솔직히 말하면 살짝 기분이 나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참 뜻을 알게 되니 저의 이 별명이 매우 소중하게 다가왔고 지금도 듣기 좋아하는 별명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는 지금 이 할머니라는 별명에 ‘정정한’이라는 단어를 추가했습니다. 최근에 TV에서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무려 900번이 넘는 시험을 치르신 차사순 할머니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보면서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다들 할머니를 떠올리면 따뜻하게 우리를 배려해 주시는 마음이 먼저 떠오르지, 무언가에 대해서 새롭게 도전하거나 그것을 쟁취하려 노력하시는 모습은 쉽게 잘 떠오르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차사순 할머님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또 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정한’이라는 단어를 넣었습니다. 2011년 여름, 저는 ‘국토대장정’이라는 도전을 하게 됩니다. 맨 처음 국토대장정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을 포함해서 친척, 친구들 까지 모두 다 ‘그 고생을 왜 사서 하지?’라는 반응 이었습니다. 이런 반응들에 자극을 받은 저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라는 생각을 가득 품고 국토 대장정에 나가게 됩니다. 생각보다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탈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정해진 양만을 마실 수 있었고, 1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 거의 뛰다시피 몇 시간을 행군하고, 씻는 것 또한 여자 9명에 물이 나오는 호스 2개를 가지고 5분 내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모든 것을 해야 했습니다. 첫째날부터 부상자가 속출했고, 둘째날이 되자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라면서 짐을 꾸려서 집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또한 힘들었기 때문에 ‘집에 가버릴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하루하루 한걸음 한걸음씩 내딛었습니다. 2주째 되던 날 저는 행군을 하다가 넘어졌습니다. 무거운 짐을 진 상태에서 넘어졌기 때문에 저의 팔의 인대가 늘어나서 깁스를 해야 할 상황이 오고 발목마저 접질러서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감기몸살로 인해서 몸도 많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으므로 저는 결국 귀가조치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이후 복귀를 하려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이 몸 상태로는 다시가도 몇 일 못 버틴다고 만류를 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국토대장정’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다시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내년에 국토대장정에 다시 도전하려 합니다. 그때가 다가오면 아마 또 누군가는 ‘너 저번에 그렇게 호되게 당해놓고 또 갈려고?’ 라는 반응을 보이겠고, 또 불의로 사고를 당해서 복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제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강 위의 다리처럼 저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수많은 도전을 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꿈꾸면서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정신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튼튼한 ‘정정한 할머니’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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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링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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