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이야기방 (익명)

인턴 일지 1~6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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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삶을 사는지 어느 덧 세 달 남짓이 지났다.

이젠 누구의 도움 없이 7시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그럴 듯 하게 반듯한 옷을 주섬 주섬 입고, 7 40분 전엔 나가야 하기 때문에 계란 후라이 3개를 한 입에 먹고, 이쯤 되면 잘 삼키겠거니 싶을 때 물과 함께 삼키고, 그 다음 잘 씹히지도 않는 닭가슴살을 물과 같이 먹고 출근을 한다.

 아무리 늦을 것 같아도 출근 길 담배 한 개비. ‘끊어야지. 끊어야지싶어도 내 손은 자연스레 담배 한 개비를 꺼내고 습한 아침 공기와 함께 백해무익한 연기를 들이 마신다.

 안암역, 학생 때도 1교시 가는 날마다 고통스러웠던 출근길의 지하철을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탄다. 어느 칸이 그나마 사람이 없을지 고민을 하고, 내 선택이 맞길 바라며 끝에서 세네번째 입구에서 기다린다. 내가 지하철을 타는게 아니라, 내 고깃 덩어리가 지하철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 가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일 것 같다.

 지하철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누구는 경제 유튜브를 보고 있고 누구는 아무 의미 없는 릴스를 휙 휙 넘기면서 출근 시간을 뗴우곤 한다. 숨이 턱 막히는 공기, 누구는 이 시간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찡그린 눈썹인 채 눈을 감고 있다. 오늘은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아무런 기대는 없어 보이고,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보이는 듯 하다.

 두 번의 환승 후 도착한 신사역. 모두가 신분당선으로 가기 위해 남녀노소 나이불문 전력 질주한다. 대한민국에서 배운 경쟁 사회란 이런 것일까? 나도 영문도 모른채 뛰기 시작한다. 물론 지하철은 오지도 않았다. 천천히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근데 모두가 뛰니까 나도 뛴다. 혹시 몰라 지하철을 놓치게 될까봐.. 혹시 몰라 뒤쳐질까봐..

 지옥 같은 출근 시간을 마치고 도착한 회사. 막내 인턴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신문 배달. 이미 땀범벅인 상태에서 무거운 신문 덩어리를 들고 10층으로 올라간다. 휴게실에 신문을 세팅을 하고, 매일경제 신문 2부는 따로 빼놓은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하십니까..” 조용히 먼저 온 팀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부는 상무님께 드린다. 그리고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사장실에 들어가. 두 번의 노크를 한다. “소리가 들리면 조용히 들어가 한 부를 건네 드린다.

 이렇게 내 제대로 된 인턴의 하루가 시작 된다

오전 9. 방학을 한 동기들에겐 아직 자고 있는 시간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고 스펙을 쌓고 있다는 일종의 승리감을 가진 채,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라는 스스로의 망상에 빠진다. 하지만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속은 비워있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곳에서 하는건 거의 없다. 내 자리에 두 대의 컴퓨터를 놓아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뿐. 그래도 인턴 따위지만 판교에 출근을 하는 일종의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기 위한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 

 오늘 올라온 회사 관련 뉴스 기사를 찾아본다. 혹시 우리 회사 비방 글이 있는지, 우리가 배포한 보도자료의 수치와 기자가 올린 수치가 일치한지 확인을 한다.

, 어제 밤에 어떤 악질 매체가 우리 회사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 실적이 낮았던 우리 회사의 공시 보도 자료를 근거로 미래와 가망이 없다는 기자의 사견이 듬뿍 담긴 악질적인 기사. 사실 이 언론 기사는 악질 매체로 유명하다. 비방과 비판 사이를 줄다리기 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회사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아주 잘 심어주는, 가스라이팅 글을 정말 잘 쓰는 매체다. 기업이 해당 언론사를 구독하면 기사를 삭제해주는 구조로 알고 있다.

 상무님이 말씀하셨다. “보도자료로 덮자

 그렇다. 우리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수십 개의 보도자료를 미리 작성 해놨다. 악질적인 기사가 올라오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려서, 우리 회사의 긍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한 기사들이 그 악질 기사를 밑으로 내려버린다. 그렇게 그 기사는 묻히게 된다.

판교에 있는 IT 회사도 이런데, 엔터테인먼트나 다른 언론사는 얼마나 이 일을 자주 할까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나한테 업무를 줬다. 보도자료로 배포한 우리 회사 상반기 공시와, 기사에서 나온 공시의 수치가 일치한지.

 숫자에 정말 취약한 나로서는(수학 때문에 재수 했다.), 정말 힘든 업무였다. 영업이익률, 연결기준 매출, 별도기준 매출, % 증가, 감소 등 염병할 단어들이 너무 많았다.

 기사가 올라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클릭을 했다.

?

천천히 읽어보니, 숫자가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래서 하나 하나 틀린 것들을 찾아 냈다. 기자들은 우리가 배포한 문장에서 하나 더 꼬아서 수능 비문학 지문처럼 만들어 냈다. 우리가 제시하지 않았던 영업이익률까지 계산을 했다.

 . 이거 어떡하지. 생각하던 중, 경영학원론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한 말씀이 기억 났다.

“ 여러분, dart는 꼭 습관처럼 들어가보는 습관을 기르세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dart에 들어가, 우리 회사를 검색하고 재무제표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결국, 새 창에 들어가 검색을 한다.

chat gpt’ -> log in -> new chat

고맙다.

우리 회사는 11 30분이 되면 점심시간이다. 25분부터 다른 팀에서 슬금 슬금 나가기 시작하고, 30분이 되면 절반 이상이 사무실에서 나간다.

구내식당은 지하 1층이다. 나는 선배님과 함께 밥 먹기 전 담배를 피기 위해 1층 흡연장으로 이동한다.

우리 선배는 헤비 스모커다. 여자분이신데, 담배를 한번 피면 3개씩 피신다. 얼마나 업무가 고단하시면, 3개씩 피시는지. (가끔 정말 스트레스 받으 실 때 4개씩 피신다. 그리고 30분동안 사무실에서 기침하신다. 듣기로는 예전에는 하나씩 피셨는데, 취준 때부터는 2개씩, 그리고 입사하고 나서는 3개씩(?) 피기 시작했다고 하신다.

나도 군대에 있을 적에, 한창 일과 당시 여자친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2개씩 핀 적은 있었는데, 선배님을 이기진 못하겠더라.

우리 팀은 나 빼고 다 여자분이시다. 내 선배님만 유일한 흡연자셨다. 내가 처음 입사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이름도 아니고

“담배 펴요?” 였다. 군대 PTSD가 왔었다.

선배님은 내가 흡연자인게 너무 기쁘신 나머지, 20분에 한번씩 회사 채팅으로 담배 피러 나가자고 한다. 이등병 때 선임들이 담배 피러 나가자고 하면 군말 안하고 따라갔던 경험 덕분인지, 회사에서도 똑같이 이러고 있다. 선배 덕분에 요즘 자고 일어나면 목이 아프다.

 

 

중학교부터 지금까지, 오전엔 항상 졸리다. 유일하게 피곤하지 않았던 시절은 이등병 때였다. 6시 반만 되면 눈이 부릅 떠지고 군기가 바짝 있었다. 일병부턴 풀어져서 눈도 안떠졌지만.

복학 후 1교시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인 수강신청을 했었지만, 결국 실패를 했다. 근데 전역 하고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마음가짐 덕분인가? 졸리지가 않더라. 물론 중간고사 이후 긴장이 풀려서 1교시마다 잤다.

한동안 드라마미생의 장그래처럼 냉혹한 현실에 던져진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 꼭 나와 같다는 일종의에 취해 있었다. 입사 초반엔 출근길에 미생 OST를 들었다. 마치 내가 사회의 고단함은 다 짊어지고 있고, 이런 내가 멋지다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뽕에 취한 상태로 출근을 해서 내가 하는 것은 사실 없다.

있긴 한데, 10분이면 끝나는 업무여서 할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폰질을 좀 하고,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티 안나게 웹 서핑을 하기도 하다가,

나무위키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현재 나무위키의 대한민국 미스터리/공포 란은 정독 완료한 상태다. 대한민국 군대 사건/미스터리 란도 절반 이상 읽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처럼 할 짓 없는 인턴들은, 창 두개를 띄어 놔서, 한 창에는 나무위키, 그리고 다른 창은 업무용 페이지를 띄어 놓으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할 때는 어떡할까

사실 긴장이 풀린 요즘, 매일 매일 졸리다. 커피도 마셔보고, 밖에 나가서 기지개도 펴보고, 볼도 꼬집어 보고 이것 저것 시도하지만 졸리는건 어쩔 수 없다. 몇 개월간 나의 몸을 관찰한 결과, 최적의 방법을 발견했다.

그냥 자는게 베스트다

자는 장소는 화장실. 화장실로 이동할 땐 최대한 급해보이는 표정을 짓고 이동을 한다. 그리고 빈 칸에 들어가서 화장실 변기 칸에 앉아서 10분정도 자고 나오면 된다. 아무도 의심을 안한다. 이건 진짜 꿀팁이다.

 

인턴은 6시 칼퇴다.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회사는 6시에 칼퇴한다.

6시의 판교역은 마치 이슬람 메카 성지 순례와 같다. 모두가 메카(=판교역)을 향해 걷는다. 퇴근길도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고역이다. 장장 8~9시간의 노역을 마친 후 정신적 스트레스 호르몬과 땀 범벅이 된 셔츠와 티를 입은 직장인들이 귀가를 위해 다시 한번 혈투를 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도 버텼다.’ 라는 일종의 안도감은 지친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금씩 물 흐르듯이 내려주곤 하는 것 같다.

 뜨거운 여름의 퇴근길, 모두가 무심하게도 양 귀에 작은 콩나물을 끼워 놓고 있지만, 매미의 울음 소리는 우리의 퇴근 길을 안전하게 안내해주고, 탄천은 사람들이 내 물소리를 한번쯤은 듣겠지?’ 싶어 쉬지 않고 물소리를 낸다. 가끔씩 구름이 걷히면 맑은 하늘이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는 듯 하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내일의 전투를 위해 다시 한번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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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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