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정말 자주 보이는 질문이 있다.
“OO직무 학벌컷 있나요?”
“이 회사 학벌 많이 보나요?”
“중경외시면 대기업 OO직무 가능할까요?”
“지방대인데 전략기획 갈 수 있을까요?”
불안한 마음에 위로받고 싶어서 묻는 거라면 괜찮다.
많이 물어봐도 된다.
“할 수 있다”, “학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힘을 내서 자소서 한 줄이라도 더 쓰게 된다면, 그것도 취업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취업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묻는 질문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듣고 싶은 답보다, 듣기 싫은 답을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취업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학벌컷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자리에 누가 같이 지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놓친다.
예를 들어 내가 중경외시를 나왔다고 하자.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학교가 낮고, 인턴도 없고, 대외활동도 많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꽤 괜찮은 지원자일 수 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그 사람들이 반드시 내 경쟁자는 아니다.
내가 서울 본사의 전략기획 직무를 원한다면, 내 경쟁자는 그 직무에 지원하는 사람들이다.
SKY를 나와 전략·경영학회를 했고,
대기업 인턴을 했고,
컨설팅 RA를 했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거나 일부 과정을 통과했고,
해외 명문대에서 공부한 지원자들.
그 사람들이 같은 공고에 지원하면 그 사람들이 내 경쟁자다.
취업에서 경쟁 상대는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해진다.
이공계와 문과계열 취업은 이 지점에서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이공계는 상대적으로 채용 규모가 큰 편이다.
연구개발, 생산기술, 설비, 품질, 공정, 설계 등 직무도 다양하고 근무지도 전국으로 퍼져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이천, 청주, 평택, 화성, 창원, 거제, 구미, 울산 등 여러 사업장에서 지속적으로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SKY부터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지방거점국립대까지 비교적 다양한 학교 출신들이 각자의 전공과 경험을 바탕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차이는 생긴다.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인기 직무, 수도권 연구소, 본사에 가까운 조직에는 자연스럽게 좋은 스펙의 지원자가 몰린다.
회사가 “이 학교 아래는 탈락”이라는 명시적인 학벌컷을 만들지 않아도 결과적으로 높은 학벌의 비중이 높아질 수 있다.
학벌컷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 지원자가 몰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공계는 상대적으로 채용되는 직무와 인원의 절대적인 숫자가 있기 때문에 기회가 조금 더 넓은 편이다.
문과계열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대기업의 대표적인 문과 직무를 생각해보면
전략,
기획,
재무,
HR,
마케팅,
영업,
사업개발 같은 직무들이 있다.
상당수가 본사나 수도권 조직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뽑지 않는다.
어떤 회사의 생산기술 직무는 수십 명을 뽑는데,
본사 전략기획은 한 자릿수,
심하면 한두 명을 뽑기도 한다.
그 작은 문으로 굉장히 많은 사람이 들어오려고 한다.
SKY 상경계열,
해외 명문대,
CPA 준비생,
회계사 1차·2차 합격자,
노무사,
전략학회·금융학회·마케팅학회 출신,
대기업 인턴,
컨설팅 RA,
VC·PE 인턴 경험자까지.
여기에서 많은 취준생이 한 번쯤 착각한다.
“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맞다.
정말 열심히 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도 똑같이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이 학벌 하나만 들고 취업시장에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그 사람들도 학회를 하고,
인턴을 하고,
공모전을 하고,
영어를 하고,
자격증을 준비한다.
그래서 취업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자기위안 중 하나가
“학벌은 좀 부족하지만 나는 다른 경험이 많으니까”
라는 생각이다.
그 ‘다른 경험’을 좋은 학벌을 가진 지원자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이런 생각도 해볼 필요가 있다.
상위권 지원자들이
‘내가 여기까지 지원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회사와 직무가 있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그다음 그룹에게 기회가 열린다.
이 말이 서열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취업시장이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다.
상위권 지원자들이 더 선호하는 회사와 직무가 존재하고,
그들이 몰리는 곳에서는 자연스럽게 경쟁 강도가 올라간다.
반대로 지역, 산업, 직무 특성 때문에 지원자 풀이 달라지는 곳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A회사는 학벌을 본다.”
“B회사는 학벌을 안 본다.”
라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정확한 질문은 이쪽에 가깝다.
“이 회사의 이 직무에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는가?”
그렇다고 여기까지 읽고
“그럼 학벌 안 좋으면 끝이네?”
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취업시장은 생각보다 냉정하지만,
생각보다 허술하기도 하다.
대학 입시처럼 수능 1점으로 줄을 세워서 위에서부터 자르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서류 이후부터는 사람의 판단이 들어간다.
그리고 사람이 판단하는 순간 변수는 굉장히 많아진다.
면접관이 중요하게 보는 경험,
팀에서 필요한 성향,
조직에 부족한 역량,
지원자의 말투와 태도,
답변의 논리,
경험에서 얻은 생각.
심지어 면접관의 과거 경험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어떤 면접관에게는 A대학 출신 직원이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면접관에게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취준생들이 말하는
“면까몰”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 면접을 몇 번 보다 보면 또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면접관마다 보는 것이 다르고,
분명 주관적인 평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면접이 끝나고 평가를 모아보면
팀장과 임원들이 좋게 본 지원자가 상당 부분 겹친다.
왜 그럴까.
결국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할 수 있고,
실패했을 때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의 경험을 지원 직무와 연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학교 이름과 별개로 면접장에서 눈에 띈다.
그래서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고,
학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학벌은 내가 출발하는 위치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최종 도착지를 반드시 결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출발선이 뒤에 있다면 더 빨리 뛰거나,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야 할 수 있다.
이 현실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취준생들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커뮤니티에서
“저도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을 너무 오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질문의 답은 아무도 모른다.
대신 이런 질문을 해보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직무에는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는가?”
“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확실히 앞서는 것은 무엇인가?”
“내 자소서에서 면접관이 기억할 만한 경험은 무엇인가?”
“내 경험 하나를 두고 10분 동안 질문받아도 버틸 수 있는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학벌과 자격증을 빼고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훨씬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조금 꼰대 같은 말을 하나 하자면,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현실을 자기에게 편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요즘 학벌 안 본대.”
“직무 경험만 있으면 된대.”
“대기업도 블라인드라던데.”
이런 문장 하나를 붙잡고 안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나도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취업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게임이 아니라
경쟁자보다 선택받을 이유를 만드는 게임에 가깝다.
현실을 냉정하게 본다고 해서 꿈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학벌이 부족하면 경험으로,
경험이 부족하면 직무 전문성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면 남들이 가지 않은 산업과 직무를 파고들면서
자기만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가능할까?”를 백 번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나는 왜 뽑혀야 하는가?”
그 질문에 남들보다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취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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